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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기만 해서 미안해 [ 2006.10.22 ]

오늘은 '낭만 IT'라는 컬럼 타이틀이 무색할 만한 이야기를 한번 꺼내보려 합니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18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인천에 사는 김모(29)씨, 일명 '김본좌'라는 사람의 이야기로 메인 페이지가 도배되고 있었습니다. 본좌란 대가(大家)를 뜻하는 인터넷 은어입니다.

이미 뉴스를 읽어 보신 분들은 이 인물이 누구인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김본좌는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포르노의 70%를 공급해 오던 '인터넷 음란물 파일 공유계의 대부'라고 합니다. 파일 공유 즉, P2P 서비스로 돈벌이를 해오던 인물로 일본 현지 출시 후 다음날이면 친절하게도 본인의 감상 소감을 코멘트로 달아 국내 사이트에 업로드를 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다고 합니다.

온라인 상에서 점점 인기가 높아지자 급기야 그는 2004년에는 회사까지 그만두고 이 일에 다 걸기(=올인)를 했더랍니다. 지난해 10월에는 일금 300만원에 다른 P2P 사이트로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았다네요.

하루에 20~30편의 음란물을 다운로드 받아 업로드하고 회원들이 파일을 받아가면서 생긴 소득은 지금까지 약 5,000만원. 왠만한 월급쟁이 보다 났더랍니다. 물론 그의 집에서는 그가 하는 일이 고작 '인터넷 쇼핑몰'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보안에 충실했으니 그동안 은둔하면서 법망을 피해 영업이 가능했던 것이겠지요.

부모님과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급히 돈벌이가 필요해 지인들끼리 공유하던 취미가 직업이 되어 버렸다는 이 사람. 사정만 듣고 보면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 양반 부산 사상경찰서에서 체포됐을 당시 내뱉은 말이 아주 걸작이라는 겁니다. "최근 2년간 최신작 음란물을 올려달라는 네티즌들의 성화 때문에 하루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군요. 결국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든건 대한민국 누리꾼이었습니다.

구속 기사가 올라오자마자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그의 안타까운 사연에 대한 기사는 수 천개의 댓글이 지금도 달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예 걸작인 댓글만 골라서 편집해 올라오는 게시물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저마다 관련 기사 댓글에는 근조(謹弔)를 의미하는 '▶◀'라는 머리말을 붙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일부 누리꾼들은 '광화문 촛불 시위'를 벌이자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누리꾼들이 저마다 자신의 센스를 발휘해 한 줄씩 적어놓은 댓글이 기가 막힐 정도로 가관입니다. 간단하게는 영화 대사나 성경 구절을 패러디 한 것에부터 현 국정 상황을 그대로 투영한 사회적인 글까지 실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을 정도 입니다. 실제로 등록된 댓글 중에서 기발한 작품(?)을 몇 가지 옮겨 적어 봅니다.

- 김본좌 가로되 너희들 중에 하드에 야동 없는 자들은 나에게 돌을 던지라 하시니 판사도 형사도 아무 말 못하더라... - 성경구절 패러디
- 돌아와서 마저 올려준다고 했잖아요..
이러고 있음 어떡해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업데이트한다고 약속했잖아요 왜 이러고 있어요
말 좀 해요 일주일 동안이나 기다렸는데... 회원들한테 뭐라고 말 좀 해요..
그때 김형 혼자 두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형..형...!!!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패러디
- 정부에서 낮은 출산률의 한 부분으로 김본좌를 지목했다 - 음모론
- 위인전에서 봅시다 - 선견지명
- 김본좌는 A/V(Adult Video)계의 문익점이다. - 슬슬 눈물이 나기 시작함…
- "신작은 다운받고 지난것은 삭제하라." 안창호(安昌浩) - 어록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 수준의 작품

무엇보다도 제 가슴을 아프게 한 문구는 다름아닌 이 문장이었습니다.

'▶◀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문장이었습니다. 마치 로맨스 영화 포스터의 카피일지도 모르겠군요. 작금의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지만 달리 도움을 줄 수 없기에 무능력한(?) 자신이 한탄스러워 내뱉은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친한 친구나 연인을 잃거나 자기로 하여금 상처받고 아프게 만들었을 때나 할 법할 말인데 말이죠.(좀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보니 일본 애니메이션 '후르츠바스켓'에 나오는 대사라는군요)

조금은 황당한 사건이었지만 서로 안면도 없는 네티즌끼리 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떠 받들면서 '인간미가 듬뿍 넘쳐날 만큼 끈끈하게 뭉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작년에 일본에서 방영된 전차남(電車男)과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국내 현행법상 '음란물 유포 행위'는 위법인 만큼 그 대가는 혹독하게 치러야 하는게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누리꾼들이 달아놓은 수많은 댓글을 재기의 원동력으로 삼아 다시 '어둠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되는건 저만의 기우일까요.

아무튼 '취미가 직업이 되는 것'만큼 고달픈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IT 신제품이 좋아 이 바닥에 발을 들여놓게 된 필자와 진배 없군요. 착잡합니다.

끝으로 저도 이 말을 김본좌에게 건네고 싶습니다.

"받기만 해서 미안해…."

김재희, 다나와 기자 wasabi@

일본 뉴스 전문 매체-뉴스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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