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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Abraxas [ 2006.10.02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Abraxas.>

선과 악을 이야기할 때 동전의 앞,뒤라느니 빛과 그림자라느니 하는 표현을 쓴다. 선이든 악이든 어느 하나는 세계의 반쪽일수 밖에 없다라는 뜻으로 이해해 보았다. 그렇다면 “오로지 선만을 추구하고 착하게만 살려는 사람은 이 세계를 단지 절반만 이해한 것이고 따라서 악한 측면도 접해봐야 한다”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단지 괴변에 불과한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이 논리에 납득되어버렸고 이제는 아예 심취해버렸다.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것, 도덕적인 것, 순백색의 지고지선을 삶의 지표로 삼는 사람에게서는 어딘지 모르게 젖 비린내 나는 유치함을 느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였으면서도 “내가 그 정도로 세상물정을 모르지는 않아”라고 말하고 싶은 알량한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결한 성자보다는 세상만사 온갖 일들에 닳고 닳은 탕아에 더 매력을 느낀다.

우리가 아는 골고다 언덕의 이야기는 예수 옆의 십자가에 매달렸던 도둑이 회개를 하는 거룩하고 감동적인 스토리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는 나에겐 뭔가가 부족하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의 입을 빌려 <무덤을 옆에 두고 회개하는 비열한 변절자>보다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가도록 도와준 악마로부터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은 도둑>을 더 높게 평가했고 나는 그 이야기에 열광했다.

하나님의 총애를 받던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헤세의 해석은 차라리 통쾌할 정도다. 카인은 <시선에 담긴 비범한 정신과 담력>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맞서지 못한 겁쟁이들이(아마 아벨과 같은 류의 인간들이었을 것이다) 그 이유를 <하나님의 표적> 때문이라고 핑계대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란다.

여태껏 사회가 나에게 옳다고 항상 제시하던 善들을 ‘알 거 다 아는’ 이 나이엔 실컷 비웃어주고 싶다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이 나를 감싸기 시작한다.

선한 밝은 세계를 부정하면서까지 나의 모범생 컴플렉스를 씻어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완전히 장담은 못하겠다) 단지 눈부시게 밝아서 너무 명백하고 뻔해 심심하기 짝이 없는 곳의 복판에 서보니 감춰져 있고 향락적이며 소모적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동했고 (26이라는 나이에 비춰볼 때 조바심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하다) 금기시되던 또 다른 면의 세계를 제대로 보고 싶다는 욕구에 솔직해진 것일 뿐이다. 착한 세계에서만 살아왔던 아벨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나는 카인들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 그리고 동경이라는 복잡한 심사에 시달렸음을 고백해야겠다.

이제 나는 우리의 주변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암울하고 음침하고 불안한 일들에 눈을 감아버리는 반쪽짜리 신을 떠나 세상의 선과 악을 모두 주관한다는 아브락사스로 향한다. 새로 바른 시멘트 길 위로 발자국 내는 걸 망설이다가 결국은 찍어보고 그래도 길이 무너지지는 않는다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흘렀고 나의 알에 금 하나가 갔다.

그림 : 맨리 P. 홀의 "모든 세기의 신비(The Secret Teachings of All Ages)"에 실린 것으로 blog.naver.com/firerain21에 개재된 아브락사스의 그림입니다. 영지주의에서 최고신으로 보았으며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신성과 악마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신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글 : <>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민음사)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이재훈,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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