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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를 기억하면서 [ 2022.09.25 ]

[뉴스재팬=포사단필]

1.
지난달 30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이 작고했다.

5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소련의 최고 권좌에 오른 그는 정치국원 가운데 유일한 대학 출신이었고, 전쟁 경험이 없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개혁)와 글라스노스트(glasnost, 개방)를 내세웠다. 전자는 통제경제와 정치체제를 개혁함이요 후자는 언론 검열의 완화를 통하여 각 분야의 투명성을 높이고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확인함이었다. 그는 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바와 소련이 봉착한 현실과의 심각한 괴리에 고민했던 순수한 볼세비키(Bolshevik)였다. 그의 죽음에 즈음하여 지도적인 정치가의 면모를 개략적으로 돌아본다.

2.
고르바초프의 최대 관심사는 통제경제로 빈사상태인 소련 경제를 되살리는 일이었다. 그는 한편으로 국가경제에 가장 큰 부담인 군비지출을 삭감하기 위하여 ‘신사고’(new thinking)를 표방하면서 소련이 동구권의 확고한 후견자임을 천명한 브레즈네프 독트린(Brezhnev Doctrine)을 포기하였다. 동독을 포함한 동구권 각국이 제 갈 길을 가도록 용인하고 주둔 병력을 철수하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철군하였다. 군부는 그가 동구권을 미국에 팔아먹었다고 강력히 저항하였다. 1991년 8월 군부와 KGB 주축으로 그를 퇴출시키려는 쿠데타를 감행했으나 옐친과 각성한 모스코바 시민들에 의하여 거꾸로 쿠데타 주동세력이 퇴출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생산을 촉진하여 경제의 숨통을 트면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국유제도와 공산주의를 포기하지 않은 채 민간부문이 주도하는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불가능했다. 통제경제는 무너지고 시장경제 전환은 어려워져 소련 경제는 혼돈상태에 함몰되었다. 만성적인 식량과 생필품 부족은 해소되지 못했고 임금과 물가 규제의 폐지로 인플레이션이 극성을 부렸다. 페레스트로이카로 국민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끝내는 모스코바에 빵 부족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고르바초프가 야심적으로 추진한 민영화는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막대한 국유재산은 그것을 관리하던 관료, 당료, 이들과 야합한 투기꾼들이 헐값으로 차지하였다.

개방정책은 판도라 상자의 개방이었다.¹⁾ 감춰졌던 스탈린 시대의 참혹한 사실들이 하나하나 공개되면서 국민들의 소비에트 체제에의 신뢰는 급속히 저하되었다. 주요 도시의 시민들은 집회와 시위를 통하여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공산주의를 비판했다. 족쇄 풀린 언론은 개혁 · 개방정책으로 무엇인가 곧 이루어질 것처럼 바람을 잡으면서 호들갑떨다가 페레스트로이카가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하자 화려한 수사만으로는 개혁을 성취할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고르바초프를 궁지로 몰아갔다. 그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글라스노스트의 파도에 휩쓸려 헤어나지 못했다.

3.
소련 사람들의 고르바초프에 대한 시선은 애증의 공존이었다.
군부와 일부 국민은 고르바초프를 러시아의 가롯 유다라고²⁾ 비난했다. 그들은 지구촌의 초강대국 지위를 잃어버렸다는 상처받은 자존감으로 분노했고, 소비에트 파워의 ‘위대성’을 그리워하는 제국주의적 향수에 젖어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소중하지만 내 조국이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³⁾

빵을 구하기 위해 서 있던 시민은 말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제1차 러시아 혁명은 사람들이 빵을 구하려고 늘어선 긴 줄에서 시작되었다고 배웠다.”⁴⁾ 민영화는 생산 증가나 국민생활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부정부패와 조직범죄의 만연에 기여하였다. 한 시민이 말했다. “지금은 엉망진창이야, 스탈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⁵⁾

다른 시민은 말했다. “드디어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온 거예요. 그 전까지 부엌에 둘러앉아 불평을 쏟아내면서 나서지 않던 사람들이 거리로 나선 거예요.”⁶⁾

4.
고르바초프는 개혁정책으로 공산당을 해체했다. 문제는 통제와 통합의 구심점이었던 공산당이 해체된 다음에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와 기구를 구축하지 못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는 동력을 급격히 상실했다는 사실이다. 고르바초프가 기계를 수리하던 중 기계는 폭발해버린⁷⁾ 형국이었다.

그의 독특한 양면성은 널리 알려졌다. 그는 끊임없이 개혁과 민주화를 말하면서 소련에서 전혀 허용되지 않던 자유를 불어넣어 활기찬 사회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지배세력으로서 견고한 공산당을 수호하려고 했다. 그가 훌륭한 민주주의자인 동시에 훌륭한 공산당원이 될 수는 없었다.⁸⁾ 그는 새로운 것을 원했으면서도 낡은 것을 버릴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⁹⁾ 옐친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리고 소련연방을 구성하던 각 공화국들이 독립을 선언하자 그는 결국 1991년 12월 25일 퇴임식도 없이 물러났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절반의 성공을 보였고 글라스노스트는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5.
그에 대한 평가는 살펴본다.

“아마도 그의 가장 큰 업적은 거의 75년 가까이 테러와 강압에 의존해 권력을 유지해온 볼세비키가 평화적으로 권력을 내려놓도록 도모한 일일 것이다. 그는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했던) 내전이나 큰 폭력을 일으키지 않고 볼세비키의 독재정치를 해체하는 데 성공했다.”¹⁰⁾

수상 직에서 물러난 대처Margaret Thatcher) 여사는 1991년 5월 개인 자격으로 크렘린을 방문하여 고르바초프와 면담한 다음, 모스코바 주재 매틀록 미국 대사를 만나 친구인 부시(George H. Bush) 대통령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해달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고르바초프가 냉전 종식에 공헌하였고 소련을 진정한 개혁의 길로 이끌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협력하여 그를 돕지 않는다면 역사는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¹¹⁾

서구와 소련의 관계 개선, 핵무기 감축, 동구권의 민주화, 독일 통일 용인 등, 지구촌을 위한 공헌으로 역사는 분명히 고르바초프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라는 평가는¹²⁾ 과장이 아니다.

6.
모스코바에 거주하는 교민 L 사장이 고르바초프의 서거 후 러시아에서는 몇 줄의 기사가 전부일 뿐, 언론에서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고 전해왔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도 추모 분위기는 거의 조성되지 않았고, 그는 이미 거의 잊혀져가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현지 독립매체 매두자도 그의 장례식을 두고 “수백만 명이 있어야 할 자리에 수천 명이 있었다”고 전했다.¹³⁾

그의 서거 9일 뒤에 세상을 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는 수십만의 인파가 모였다고 한다. 영욕은 무상하나, 70년 동안 왕좌를 지킨 다복한 군주보다는 74년 동안의 공산당 철권통치에 종지부를 찍고 20세기의 지구촌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자 노력한 고르바초프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의 명복을 빈다.

전영규 칼럼니스트

주.
1) Bernard Gwertzman and Michael T. Kaufman, ed. The Decline and Fall of the Soveit Empire (New York; Times Books, 1992), p.xvi.
2)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 김하은 옮김, 『세컨핸드 타임』 (이야기가있는집, 2016), p.28.
3) 위 책, p.161.
4) Bernard Gwertzman and Michael T. Kaufman, ed. p.297.
5)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 김하은 옮김, p.379.
6) 위 책, p.145.
7) David Remnick, Lenin’s Tomb (New York: Vintage Books, 1994), p.502.
8) Bernard Gwertzman and Michael T. Kaufman, ed. p.xi.
9) Hedrick Smith, The New Russians (New York: Avon Books, 1991), p.238.
10) 올랜드 파이지스 지음, 조준래 옮김, 『혁명의 러시아 1891~1991』 (어크로스, 2017), p.420.
11) Jack F. Matlock, Jr., Autopsy on an Empire (New York: Random House, 1995), p.537.
12) John M. Thompson, Russia & the Soviet Union (Boulder · San Francisco · Oxford: Westview Press, 1994), p.290.
13) 경향신문, 202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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