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2년 09월 26일


- Busan appoints new...
- Handheld mask allo...
- Is the US-China Tr...
- Asian Project Mark...
- Takemasu, Making C...
- Issues with Policy...
- Social Security fo...
- Patrick Harlan (TV...
- Sony’s Revival
- Will India Manage ...

일본어로 수학 가르치는 일원 상록 학습관



hold on Korea Society


칼럼Zone

국제 금융 浦沙短筆
고르바초프를 기억하면서
히로미의 사설보기
고령화사회 대책 대강(代綱)
速 종합 격투기 통신
UFC 챔피언 생피에르, 최고...
게일 킴 핫라인
Overview of and ...
Here's What Happened
재외동포교육문화센터, 서울대 ...
재일교포 그리고 일본
재일교포 이야기
Bold English
Go by the book
SOCCER INVESTOR
공격수 아데바요르, 레알 완전...
Asia Pacific Yard
"Night Schools" ...
일본인에게 영어를
일본 산의 매력
어느 바텐더의 날들
十夜「ある冬の夜の出੖...
한지붕 두나라
일본을 떠날 때까지
평범녀의 빌린 인생
무라카미 류
민주주의 상징 김대중
70년 대선, 박정희와의 한판...
각양각색 동북아 소식
일본항공, 아메리칸 에어라인과...
Movie Craze
(Old) Sex and th...
The 힐링여행 SOUM숨
Black sauced noo...
자전거 일본 여행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계가 보는 일본




flag counters

산토리, 위드코로나 기업 전용...
[칼럼] 2021년 4월의 열...
세이코, 마침대 2세대 시각장...
두번째 모유뱅크 개설, 도너 ...
조리사 로봇, 한번에 면 3개...
태국 방콕에 사상 첫 일본 고...
러시아 내 최초 일본 물품 전...
[칼럼] 호리천리(毫釐千里)
지자체, 외국인 안전위한 재난...
헬로키티 신칸센, 하카타-신오...


국제 금융 浦沙短筆 NJSave up to 70% on your next stay with Hotelclub.com
행원야승(13) [ 2022.07.31 ]

[뉴스재팬=포사단필] 가출 소년 이야기.

가까이 지내는 K 선배는 지난해 팔순을 넘겼다. 고향은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 울고 넘는 박달재 아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6·25전쟁이 터졌고, 5학년 때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공부를 잘했으나 1953년 봄 초등학교 졸업 후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그러나 향학열은 어쩔 수 없어 2년 동안 서당에서 글을 배웠고 고등공민학교도 다녔다. 천자문, 동몽선습, 격몽요결, 명심보감을 떼고 나서 동네 친구 셋과 함께 넷이 이 산골 마을에서 벗어나기로 작심했다.

아버지께 집을 떠나겠다고 말씀드린 다음 마늘 두 접을 들고 봉양역에서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 내렸다, 넷이 답십리 쪽에 눈 붙일 만한 방을 구한 게 1955년 여름, 나이 열다섯 때였다.

곧 신문팔이로 나섰다. 부지런히 신문을 팔던 어느 날,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겁도 없이 역전에서 신문을 판다고 얻어터진 뒤 몇 푼 안 되는 신문 판 돈도 빼앗겼다. 그러나 달리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으니 신문팔이를 계속했다, 호떡 하나라도 사먹어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 몇 차례 더 끌려가서 얻어맞았다.

그가 권투도장인 신도체육관에 찾아가 권투를 배우기 시작한 때는 한참 뒤였다. 천성이 부지런해 신문도 열심히 팔았지만 그 이상으로 권투도 열심히 익혔다. 이듬해 동대문야구장에 설치된 특설 링에서 전국아마추어권투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 밴텀급 서울 대표로 출전하여 우승했다. K의 우승 소문이 돌면서 그 바닥에서 폭력은 면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뜻밖에 큰아버지를 만났다. 백부께서 서울 어디에 사신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어딘지도 몰랐고 알았더라도 찾아갈 생각이 없었다. 휴전 직후, 서울이나 시골이나 민초들은 살기가 참 어려운 시절이기도 했고, 가능한 한 내 일은 내가 해결한다는 차돌멩이를 품고 있었다. S대학교 영선 기사로 일하는 백부의 소개로 1957년 가을부터 학생과 급사로 일하게 되었다. 비록 소액이나마 고정된 수입이 생기자 성북동에 자취방을 얻어 공부하면서 장충단 근처에 있는 D고등학교(야간)에 입학하였다. 그는 거기에서 오늘까지 평생 친구가 된 P를 만났다.

D고교 2학년 마치고 3학년으로 진급하게 되었을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1년 유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누구나 하루라도 빨리 졸업장 받으려고 아우성인데 이런 맹랑한 녀석이 있나. 담임은 의아했으나 2학년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 한 해 더 배우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새벽 일찍 성북동에서 종로 5가 학원으로 나와 공부하고 곧바로 S대에 가 일하는 바쁘고 고단하나 즐거운 시절이었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한 해 먼저 S대 철학과에 입학한 P를 만나 대학 진학 문제를 논의하였다. K는 1961학년도 대학입시에서 낙방하자 짐을 싸들고 용문산 계곡으로 들어가 다시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곧 5·16 군사혁명 터져 온 나라는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그해 가을 K는 농촌부흥을 중심으로 덴마크의 부흥사를 소개하고, 전후 한국인의 자기성찰을 촉구한 유달영의 『새역사를 위하여』를 감명 깊게 읽었다. 농촌부흥에 자신이 감당할 구실도 있다는 열정으로 고향으로 내려가 산자락을 농지로 개간하고 콩과 옥수수를 심었다. 꿩을 비롯한 조류와 들쥐의 왕성한 먹이활동도 문제였으나 준비부족과 경험부족으로 밭농사는 버렸다. K는 농사를 가볍게 여긴 자신의 경솔함을 거듭 뉘우쳤다.

입시 준비 후 1963년 Y대 철학과에 진학하였다. 철학과 선택은 친구의 권유도 있었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 자주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의문은 수년 동안 청량리 역전 바닥을 헤매고 대학교 학생과 급사로 일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품게 된, 막연하지만 좀처럼 떨쳐내기 어려웠던 의문이었다.

대학 입학 후 때로는 D고교 동기생이 벌여놓은 고물상에서 기거했고, 가정교사를 비롯한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업을 이어 갔다. 간혹 등록금에 보태 쓰라는 친척들의 도움도 있었다. 훈련병으로 전후반기 교육을 마친 뒤 행정병으로 군 복무도 마쳤다. 그는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하여 사회과학 쪽의 강의도 열심히 들으면서 교복 한 벌도 사 입어보지 못하고 대학생활을 마감했다.

철학과 출신을 받아주는 기업을 보기 어려운 현실에 떨떠름하던 차에 C일보에서 수습기자 채용공고가 있어 응시, 합격하여 수습기자가 되었다. 시험 문제 가운데 흥미로웠던 한 문제는 한글로 된 기사 중 한자로 쓸 수 있는 글자를 모두 한자로 쓰는 문제였다. 적어도 그 문제는 완벽히 썼다고 자신했다면서 웃었다. 당시 수습기자의 월급은 7천 원이었는데, 3천 5백 원씩 두 차례로 나눠 받았다.

기자생활 채 1년이 안 되어 그는 신문사를 떠났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자신의 적성에 그다지 어울리지도 않았고 언론기관에서 자신의 성장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때마침 시중은행이 처음으로 인문계 출신에게 문호를 개방하였기에 입행시험에 합격하여 1970년 F은행에 입행하였다. 은행에서 첫 근무부서는 개발저축부였다. 해외 근로자와 월남 파병 국군들의 봉급 관리가 주요 업무였다. 신입행원의 본부 부서 근무는 이례적이었다.

그는 은행 업무를 두루 배우기 위해 일선 지점 근무를 자원하여 중랑교 예금취급소로 옮겼다. 개발저축부는 다수 행원들이 선호하는 부서였다. 무슨 사연이 있어 예금취급소로 발령받았다고 오해한 소장은 열심히 일하면 다시 본부로 갈 수 있다고 위로했다. 당시에 적금권유수수료가 짭짤했는데, 월말에 직원들이 권유수수료를 모두 대리에게 전달했기에 그는 다음 월말부터 그것을 적금을 실제로 권유한 직원들에게 지급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에 F은행 노조 간부가 찾아왔다. 은행 노조는 노조신문을 발행할 참이어서 신문사 수습기자 경력의 그를 적임자로 물색했다.

은행 노조에서 활동하던 1972년에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위원장에 당선도 가능했으나 부위원장을 끝으로 1975년 은행업무에 복귀하였다. 노조에서 보인 그의 합리적인 활동을 눈여겨본 은행은 지점과 본부에서 근무하면서 은행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시야를 넓히도록 그를 배려하였다. 1979년 가을에는 국제부 대리로 근무 중인 그를 중동 진출 건설회사의 자금 관리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주재원으로 파견하였다. K가 처음으로 지점장 발령을 받은 때는 1990년이었고, 1994년 정기 인사이동에서 해외 C지점 지점장으로 발령받았다.

1996년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 부부를 자신이 근무하는 도시로 초대하였다. 담임선생님은 봉양면 출신으로 사범학교를 갓 졸업하고 봉양초등학교로 부임한 여선생님이었다. 첫 부임지 교단에서 성심을 다해 산골 아이들을 사랑하신 선생님을 오래도록 기억하던 K가 입행 후 수소문하여 전부터 가끔 찾아뵙던 사이였다.

1998년 현지에서 사표 제출 후 귀국하여 퇴직한 다음 2년 동안 IMF 외환위기로 졸지에 실업자로 전락한 수많은 은행원들의 재취업을 알선하는 전국은행연합회 재취업센터 소장으로 일한 뒤 금융계를 완전히 떠났다.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가. K는 다시 서당을 찾았다. 은퇴한 모 대학 중문학 교수가 강남에 차린 서당에서 3년 동안 사서삼경을 공부했다. 2015년 우리 몇몇이 그의 가출 60주년을 축하했다. 가출이 아니라 출가였다는 그의 말이 정확했으나 우리들은 두멧골 촌사람이 마늘 두 접 들고 가출했다더라 하면서 웃었다.

배고팠던 시절, 친구네 집에 가면 그 집 또한 어려운 가운데 끼니를 꼭 챙겨주었던 누님에게 용돈도 드리고,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 병마에 시달리는 초등하교 친구에게 치료비도 도와준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전에는 대학 동기 몇몇이 해마다 한두 차례씩 은사 김oo 교수를 찾아뵈었다.

함께 고향을 떠났던 넷 중에 둘은 이미 세상을 떴고 남은 둘이는 가끔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잔을 주고받는다. 우리들 모임 날에는 모과주며 산수유주며, 가양주를 자주 들고 나오는데, 요즈음엔 외손주들이 탈 없이 자라는 모습에 그저 즐겁고 감사할 뿐이다.

K는 대학에서 인문과학을 공부하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자부한다.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고생으로 부지불식간에 배태되었던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고 나와 너(I and YOU)를 생각할 수 있는 한 인간으로 성숙함에 그것이 버팀목이 되었다고 믿는다.

80평생에 아쉬운 점을 물었더니 그런 것은 없다고 말했다. 처한 환경에서 분수에 맞게, 자신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주저 없이 했고, 해야 되었던 일에 최선을 다했으니 섭섭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필자도 80이 다 되었으나 아직 붙들고 있는 게 적잖다. 다행히도 품이 넉넉한 벗이 있어 내 생활을 돌아보게 하니 이 또한 망외의 복이지 싶다.

그는 오늘도 하루 만 보 걷기에 나섰을 터이다. K지점장, 3년 후에 출가 70주년 기념 약주 한잔 사겠소, 건강하시오. 長毋相忘!

전영규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유일의 일본 뉴스 전문 매체- 뉴스재팬 (NewsJapan.net)


< Copyrights (C) 뉴스재팬 / www.newsjapa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Facebook Share / 페이스북 공유
To E-mail / 기사 메일송신 | To Print Out / 기사 출력


  • Unexpectedly Surprisingly The Most Popular News >>   의외로 가장 많이 읽혀진 뉴스
Takemasu, Making Convenience Stores Essent...
Tokyo Sky Tree opens
Patrick Harlan (TV Personality) “Dreaming ...
“Ask a Pediatrician” baby workshop
木育(mokuiku) Nature it is
도시바 반도체 데이터, SK하이닉스로 불법 유출?
Enjoy Exciting PiFan with Ha Seon Park, th...
To deal with adversity, Japanese companies...
All Nuke Reactors Shut Down
"Night Schools" in the Affected Area Start...
Save pets in Fukushima
PiFanでは毎日、星が輝く
特別展-SFアニメーションの伝説:宇宙&#...
Dance course becomes compulsory curriculum...
전설의 프로레슬러, 스팅(Sting) 단독 인터뷰
프로레슬링 디바, 크리스탈 단독 인터뷰
WWE 차세대 기대주, 바비 레슐리 단독 인터뷰
최경량 월드챔프, 레이 미스테리오 단독 인터뷰
NO.1 아나운서 후나키, 타지리 일본행 만족
일본 대학생, '아이팟으로 출첵!'
[사설] 사회보장 '간담회의 헛스윙은 정치태만'
후속탐사기 개발착수, 생명의 기원 규명 다가서
글쓴이
비밀번호 * 삭제시 필요합니다.(4~6자이내)
제목
내용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등 법률에 위반되는 글은 삼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게시물에 대한 민형사상의 법적인 책임은 게시자에게 있으며 운영자에 의해 삭제되거나 관련 법률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글쓰기전 최종체크
주간 베스트 뉴스











exclusive image

뉴스재팬 소개 / About Us  |   광고 제휴 / Advertisements  |   만드는 사람들 / Staffs  |   By Other Presses                                                                              시작페이지로  |   즐겨찾기로

 
NPO 法人 |   Incorporated Non Profit Org. Answer Asia / 비영리기구 앤서아시아 (아시아의 평화와 우호를 생각하는 모임)
Main Spot |   アンサ一アジア ヘッドオフィス is located at Takajukacho Hirakata Osaka Japan
K Spot |   Alternative School is at #126 F1 Sangroksu Apt Mall Ilwonbondong Gangnamgu Seoul Korea
T Spot |   PR Place is at Soi Vuthiphan Rachaprarop Rd. Rajathevee Bangkok Thailand
Contact |   E-mail : newsjapanet@gmail.com | Need a phone number? Email first | Very active from the year of 2005
          Copyright ⓒ 2004 ~ 2020 NewsJapan.net. All rights reserved. Contact newsjapanet@gmail.com for more information. admin